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F. 케네디 (문단 편집) ==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닉슨]]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케네디 닉슨.jpg|width=100%]]}}} || ||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토론회에서 맞붙은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닉슨]]. || 현대에 들어서 케네디는 양당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로서 [[로널드 레이건]]과 많이 비교되지만,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레이건보다 닉슨을 케네디와 더 많이 비교하는 편이다. 케네디는 어마어마한 부자 가문인 [[케네디 가문]] 출신인 반면, [[리처드 닉슨]]은 서민층의 자녀로 태어났다. 두명 다 [[하버드 대학교]]를 지망하였으며, 케네디는 공부를 못했는데도 하버드 대학교의 총장과 친구 사이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입학한 반면 닉슨은 자신의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하버드에 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을 낼 수 없어 결국 입학을 포기했던 과거가 있었다. 케네디는 2차 세계 대전 시절 해군에서의 활약과, 자신의 [[언론플레이]]로 태평양전쟁의 영웅 이미지를 메이킹하였지만 닉슨은 비전투 병력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저도 2차 대전에 참전했었습니다"라는 초라한 슬로건을 내걸 수 밖에 없었다. 또 닉슨은 자신과 달리 젊고, 잘생긴데다가 언변도 화려한 케네디에게 엄청난 열등감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런 닉슨의 열등감은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무리수를 저지르는데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세세히 파고 든다면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둘의 악연은 길다. 닉슨과 케네디는 같은 1946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47년 초선 의원끼리의 친목회에서 초선 의원들이 가벼운 정책 토론을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케네디의 상대로 맞붙은 사람이 닉슨이었다. 게다가 하원 의원 시절 닉슨의 의원 사무실은 361호실이었는데, 바로 옆방인 362호실은 케네디의 방이었다. 이 때문에 닉슨과 케네디는 처음에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1953년 케네디의 결혼식에 닉슨이 하객으로 참석했을 정도. 둘은 점심까지 같이 먹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고, 1959년에는 케네디가 만약 자신이 대선 후보로 나서지 않는다면 닉슨에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각별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경선에서 승리해 본선에 나서 닉슨과 붙게 되었다. 이렇듯 출신 성분부터 소속 정당, 생애, 정치 성향까지 모든 면에서 반대인 두 사람이었지만 정작 두명 다 대통령 임기를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는 점이 미국 현대사의 아이러니이자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